- 국기 태권도
- 태권도 역사
태권도는 한국 무예문화의 소산이다. 즉, 한국이라는 문화적 토양에서 시대적, 지역적 상황에 따라 원류가 형성되고 변천하여 오늘날 태권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러 문화가 그러하듯이 특히 무예 영역에 있어서 서역, 중국, 오키나와, 일본 등 이웃 나라와 문화 교류가 빈번했다. 한때 서역과 중국 무예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반대로 고대 마상무예, 수박(手搏), 씨름과 같이 한국 무예가 고대 일본이나 중세 오키나와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와 같이 무예는 사람이 행하는 비물질적인 무형문화이므로 시대적이고 지역적인 문화 접변의 양상을 띠기 마련이다. 이러한 무형문화는 지역별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기질과 전통, 사회상, 현실적 가치관의 상호작용에 따라 끊임없이 재창조되어 구전이나 기록으로 전승되어 온 결과물이다.
태권도는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복잡한 문화접변의 양상이 얽혀 있다. 현대 태권도의 형성 과정은 가깝게는 20세기 초, 일제강점기, 만주지역의 중국무술과 오키나와테(沖繩手) 원음인 토오디(唐手, 후일 空手로 바뀜)가 도입되었고 한국의 전통무예 택견이 결부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태권도는 한국무예문화의 풍토나 배경에서 외래무예를 수용하여 토착화한 주요 사례이다. 이런 이유로 태권도사는 한국의 고전 무예를 포함한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한국 무예 문화사로 다루어진다. 태권도는 한국이라는 지역에서 형성되고 발달한 무예이자 스포츠이다. 따라서 태권도의 역사는 큰 틀에서 한국사의 맥락에서 다루어질 수 있다.
태권도의 전통, 한국 맨손무예사 (고대~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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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B.C. 24C~A.D. 10C
고대는 고조선이 발흥한 시기부터 삼국시대를 거쳐 통일신라에 이르는 시기이다. 고대에는 무예 자체가 개인과 집단의 생존이 걸린 전쟁 기술이었으므로 적극 장려되었다. 즉, 무예는 개인적으로는 출세 수단이 되었고 국가 차원에서 존망이 걸린 사안이라 중요시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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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10C~16C
중세 시대는 고려왕조 시작부터 16세기 임진왜란 이전인 조선 전기까지로 설정하였다. 중세 시기 역사서는 맨손 격투무예인 수박(수박희) 활동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였다. 특히 고려시대 무신정변의 계기로서 ‘오병수박희’가 등장하는데, 수박이 군사들의 무술경기로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수박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에도 많이 나오는데 국왕을 호위하는 군사들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널리 행해졌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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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17C~1945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연이은 전란을 거치면서 17세기 조선 사회는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양 난 이후 격변의 시기부터 개항을 거쳐 일제강점기까지를 무술사적으로는 근세로 구분하였다. 이 시기의 특징은 전란으로 인해 ‘권법’ 같은 군사무예가 확립되었고, 서민문화의 확산으로 여러 가지 상무적 민속경기가 발달하면서 ‘택견’도 등장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유도, 검도가 한국에 유입되었다. 한편 만주계 중국 무술을 배웠거나 일제 말기 여러 유학생들이 일본에서 가라테를 연마하면서 외래무예를 도입하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현대 태권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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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태권도
~1960
광복 직후 한국인에 의해 외래무술이 도입되어 5대관이 태동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택견에서 착 안된 차기 위주의 신기술이 개발되어 한국적 특성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5대관 초기부터 협회 구성도 추진되었다. 한국전쟁 후 수많은 관이 난립하던 중에 ‘태권도’ 명칭이 등장하고 통합 협회가 추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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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합의 결실
1961~1970
1960년대 초 발발한 4-19 혁명과 5-16 정변은 태권도계 혁신의 계기가 되었다. 새 정권이 들어서자 숙원 과제였던 유사단체 통합안이 추진되어 마침내 정식 협회가 성립하였다. 공인 승단심사는 협회 주관으로 일원화되었다. 독자적인 겨루기 경기가 1963년 제44회 전국체전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승단심사에 채용되는 품새도 협회 차원의 새로운 내용이 제정되었다. 1960년대 태권도의 해외 보급이 시작되었고 아시아를 비롯하여 유럽, 미국 등지로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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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약적 발전
1971~1985
1971년부터 15년간 태권도계는 협회를 중심으로 국내외적 도약을 성취하였다. 이 시기 초, 대통령의 ‘국기태권도’ 휘호는 태권도의 국내적 기반을 강화하였다. 이어 국기원이 건립되고 세계태권도대회 개최를 발판으로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 (GAISF, General Association of International Sports Federations)에 가입하면서 불과 2년만에 국제 스포츠 대열에 합류했다. 또한 정부(문교부) 방침에 따라 초·중·고등학교 공교육에 정식 교과과정에 포함되었을 뿐 아니라 대중문화 소재로 각광을 받음으로써 저변확대가 촉진되었다. 여러 대학교에서 태권도 전공학과가 개설됨으로써 태권도 학문적 이론도 추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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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진출
1986~1999
태권도가 1986 서울아시안게임 정식종목과 1988 서울올림픽 정식종목으로 거행되면서 올림픽 진출이 가속화되었다. 이후 국제 공인 스포츠 경기로서 태권도의 위상이 높아져서 1994년 IOC 총회에서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확정되었다. 90년대는 ‘태권도 한마당’이 창설되고 태권도가 한국의 10대 문화상징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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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무예스포츠
2000~
태권도는 호신과 건강은 물론 정신수양을 위한 무예이자 인생 성공의 기회를 제공하는 올림픽 스포츠로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 태권도는 본산지 한국에서 법정 국기(國技)로 확정되었다. 여러 나라에서는 태권도를 공교육 과목으로 도입하였다.
출처 : 국기원 태권도 교본(2021)